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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2016

[16-9]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이수진

이제, 독후기록을 남길때 첫문단을 첨부해보려 한다.

소설을 쓰고자 결심한 소설가가 머릿속에 구상을 한 내용을 글로 풀어내기 시작할때, 그 먹먹한 백지 앞에서 어떤식으로 첫 공백을 채워나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노려보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모든 것을 엎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참지 않는다면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곳에 내 편은 없었다. 누구도 내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물론 나는 참을 것이었다. 더는 참고 싶지 않아도 참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지긋지긋했다.


 사건의 시작이 있고, 그 중간부터 묘사하여 독자는 어떤 새로운 세계에 떨어졌지만 아직은 무슨일인지 모르는 상태로 마주하게 된다. 이 지점부터 앞 뒤의 인과관계와 인물등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시작한 것이다.


 주인공 한,의 전 여자친구는 고양이 애호가, 이 소설에서 '버틀러'로 불리는 존재였다. 헤어지고 연락을 받지 않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고양이 애호가 모임에 갔다가 지긋지긋한 고양이들 사이에서 안티 고양이 애호가 모임에 은밀하게 초대받는다.


 -"며칠 후에 '고양이 박람회'가 열리는 것 알고 계시죠? 텔레비전에서 매일 광고하고 있잖아요. 마침 미스터 버틀러도 그곳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떴어요. 바로 그곳을 공격할 겁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자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억압에 저항해야 해요. 우리에겐 취향에 의해 매도되지 않을 권리가 있단 말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사람들이 자유로운 취향을 가질 수 있게 하려고 싸우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리고 바로 지금이 우리가 활동할 때입니다."


 그곳에는 곽, 오, 박, 김A, 남궁 등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있다. 이들도 각자 취향에 의한 차이에 대해 상처를 입고 하나 둘 모인 인물들이다. 이들이 타파하고자 하는 것은 이 소설에서 고양이 애호로 대변되는 배타적인 취향이다. 메인 스토리는 고양이 애호가가 늘어가는 시점에서 이를 이용해 대선에 출마하려는 장국태를 저지하고, 특히 더 배타적 취향을 강요하거나 다른 취향을 무시하는 고양이 애호에 대한 공격을 하는 내용이다.


 그 사이사이에는 인물들의 스토리가 나온다. 채팅에서 '여고생'을 만났다가 상처받은 오, 침상에 누워 고양이만 먹겠다는 아내를 위해 고양이를 잡아오는 박, 김B라는 연인을 만났던 고양이 카페와 그 사이에서 상처받은 김A, 소설가의 아들로 태어나 마이너의 아픔을 겪고 느낀 남궁 등의 이야기이다.


김A의 이야기.

 -그러나 김A는 밴드활동을 더 좋아했다. 왜 나더러 아이돌이 되라고 하는 거지?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는 게 나빠? 내 취향이 나쁜가? 나쁜 취향이란 건 뭔데?

 사람들은 그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나열을 들을 때마다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취향이 다양하시네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김A에게 '취향이 없으시네요'라고 말했다. '취향이 없는 뮤지션은 쓰레기나 다름없지'라고도 말했다. 그것은 김A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억지로 좋아할 수도 없었다. 꿀리지 않으려 록의 역사 같은 것을 공부해볼까도 했지만 도무지 관심이 가질 않았다. 밴드 멤버들은 늘 그것에 대해 얘기했다. (...) 김A의 별명은 채플린이었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입 닥치고 퍼포먼스나 하라는 의미가 담긴 굴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알고 있었따. 김A도 그 음악들을 분명히 듣고, 알고 있었다. 그는 다만 멤버들의 풀 네임, 그들의 고향, 결성의 뒷이야기, 신화적인 라이브 무대 같은 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그는 점점 자신의 무지와 취향을 숨기게 되었다. 더는 무시받고 싶지 않았다. 너무 다양한 취향은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따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었다.


 남궁의 이야기.

 -" 남들과 다르다는 건 나쁜 거다. 그래,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너를 보니 더 알겠구나.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너는 다행히 같아 보이는구나. 계속 그렇게만 지내라. 알겠냐. 다르고자 해도 불가능하겠지만 참 다행이다. 너는 같아 보이니 말이다. 너는 그렇게 다른 아이들을 비웃고 놀려야 한다. 피부색이 다르거든 놀려라. 알겠느냐. 하는 행동이 다르거든 놀려라. 알겠느냐. 사랑하는 대상이 다르거든 놀려라. 알겠느냐. 팔다리가 부족하거든 놀려라. 알겠느냐. 그게 네가 살아남는 법이다. 아버지는 살아남지 못했다. 아버지도 놀리고 비웃고 싶었으나 못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흉내 내길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실패자야. 그런 면에서 너는 훌륭하구나. 네가 나를 안 닮아서 천만다행이다.

 "아버지는 지금 저더러 쓰레기가 되라는 말씀이세요? 그동안 아버지와 소원하긴 했지만 마음속 한구석엔 존경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괜한 짓이었네요. 아버지가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어요? 제가 그 녀석을 비웃었다는데 어떻게 훌륭하다고 말씀하실 수가 있어요? 저를 나무라셔야죠. 차라리 회초리를 드셔야죠."

 (...)

 "너는 나와 다르다. 그래서 다르지 않지. 너는 그것을 축복으로 여겨야 한다. 어줍잖게 이해하려 들지 마라. 네가 나를 비웃는 것은 뺨을 때리는 것과 같지만, 너의 어설픈 손 내밀기와 이해의 시도는 내 목을 조르는 것과 같다. 내버려둘 수 없을 바엔 돌을 던지는 게 낫다.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테지. 너는 그렇게 태어난 종족이다. 너는 다르지 않으니까."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 떠오른다. 오웰은 동물농장에서의 일화를 통해 당대 사회를 투사시켜 비판하고자 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고양이 애호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취향과 취향에 대한 배타를 담아낸 것이다. 이 소설 전체를 통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저희는 '안티 버틀러', 이 세상의 모든 버틀러에 반대합닏. 여기서 버틀러란, '집사'라는 의미로 일부 고양이 애호가를 지칭하는 데서 출발하였지만 그들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취향에 근거해 타인을 차별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 자신의 취향을 숭배하기 때문에 타인의 취향을 낮잡아 보는 모든 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취향이란 무엇일까요? 이 시대에 취향이란 자신의 개념을 드러내는 지표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에 매혹되어 있는지는 우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뿐일까요? 우리는 그 뒤에서 일종의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변 애호가 중 배타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이른바 저희가 버틀러라고 부르는 이들이죠. 그들은 주로 소수의 무리였을 겁니다. 다수에 의해 이해받지 못하는 데 염증을 느끼고 공통의 취향을 가진 이들끼리 뭉치게 되었을 테니까요. 그게 그들이 배타적이 된 역사적 배경이었죠. 긍정적인 결과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보다 더 깊은 수준의 연구와 학습을 하는 경향을 보였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식의 자의식이 싹텄지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 스스로 벽을 쌓으며, 타인이 자신들의 애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단합은 더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바깥으로 뻗어 나오는 배타가 크고 강하다는 것은 그들 내부의 결속력이 강하다는 반증이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저희는 장국태 의원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궁극적 목적은 특정 취향에 지배되는 세상을 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취향은 동일한 만큼의 가치를 지닙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우열이 가려질 수는 없습니다. 호불호가 외압에 의해 결정될 수 없는 것은 취향이란 것이 그만큼 순수하단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의 취향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취향 또한 소중함을 알아야하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든 이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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