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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2016

[16-11]표백-장강명

-박주영 진호그룹 회장 장남, 미국에서 숨진 채 발견

 기사 입력 20XX-08-29 14:31

(서울=연합뉴스) 재계 서열 6위인 진호그룹 박주영 회장의 장남인 선우(29.사진)씨가 24일 미국 필라델피아 자신의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고 그룹 관계자가 밝혔다.

(...)

 나는 전북 익산시청 7급 공무원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도 공무원이었다.


소설의 중반부에 나오는 한 사건을 앞에서 기사로 인용하여 시작한다. 기사 인용 후에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로 소설을 열어간다.


 '세연'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세연은 현 시대를 '표백'시대 혹은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지칭한다. 즉, 완성된 시대라는 것이다. 전쟁이니 혁명이니 사회 전복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거창한 목표들은 이미 이루어 졌고 세상이 완성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더이상 젊은이들은 거대한 꿈을 쫓을 수 없게 되버렸다. 이미 완성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고작해야 고시에 합격하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 따위의 목표에 목을 메고, 딱 그만큼의 정신세계만을 가지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요즘 젊은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완성되어버린 사회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저항-마치 로큰롤 처럼-으로 '자살'을 택하는 것이다. 다만 이 자살은 절대 무엇이 결핍됬거나 무언가 이유가 있었다고 여겨져서는 안되며 오히려 무언가를 성취한 뒤에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런 마음가짐으로 연쇄 자살을 계획한다. 


-1978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유지, 보수자의 운명을 띠고 세상에 났다. 이 사회에서 새로 뭔가를 설계하거나 건설할 일 없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이들의 임무라는 뜻이다. 이들은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다. 나는 여기서 나를 포함해 이런 사명을 부여받은 우리 세대의 젊은 이들이 어떻게 해서 만성적인 좌절감에 빠지는지 밝히고, 그런 좌절감이 누구의 탓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한 근본적인 문제임을 증명해보겠다. 또 타고난 능력과 근면, 성실함으로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는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굴욕에 대한 답이 아니며, 그런 성공은 본질적으로 시시한 것임을 논해보겠다.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그녀의 잡기장에서는 재키, 소크라테스, 재프루더, 루비, 하비, 제리, 메리, 적그리스도로 표현되는-역시 그녀가 자살한 후 차례로 이런 저항 운동에 참여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 장치를 치밀하게 고안한다. 실제로 세연이 자살하고 그녀와 함께했던 인물들이 차례로 자살한다. 이 자살은 철저히 자발적인 것이었으며, 세연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자살의 이유를 그대로 따른다. 


이 인용은 소설의 초반에 세연의 주변 인물들의 생각이었다.

-"스물, 스물다섯에 죽는 놈들은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거지... 인생에 즐길 게 얼마나 많은데 왜 그때 죽어? 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놈들의 게으름이고 감상 과잉이지. 난 삶의 단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 다 빨아먹고 내 인생의 쾌락의 총합이 최대가 되는 시점에 죽을 거야. 그런데 쾌락의 총합에서 고통의 총합을 뺀 양이 최대가 되는 때가 대강 예순다섯 살이라는 거지. 뭐, 의학의 발전 같은 것도 고려해야겠지만 말이야."


 스토리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다른 인물들의 색채가 뚜렷하지 못하다는 점은 아쉽지만 세연과 추의 캐릭터가 톡톡 튄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흥미로운 스토리 속에 작가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완성되어 버린 시대에 넌 어떻게 살고 싶니? 작가의 말에서도 말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신도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