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조난일기]와 영화 [까베사 데 바카]의 비교 레포트
조난일기의 행간에서 나온 [Cabeza de Vaca]
영화 [Cabeza de Vaca]는 까베사 데 바카의 Relación을 원재료로 각색된 작품이다. 텍스트 조난일기는 서문과 3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항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사건들과 보고 겪은 일들에 대한 기술, 그리고 돌아오는 과정까지가 담겨 있다. 반면 영화에서 초점을 맞춘 부분은 노예생활과 까베사 데 바카의 기적의 치료가 주를 이룬다. 영화에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실제로 알바르가 어떤식으로 인디언들 사이에서 살아 갔는지, 기적의 치료라는 것을 했다면 어떤식이었을 것인지 그것을 화면으로 재현하는데 초점을 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Relación으로서의 텍스트와 영화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중점적으로 살펴볼 부분은 보고서 작정자로서의 까베사 데 바카가 보여주고자 했던 자신의 모습, 즉 자신의 이미지를 어떤식으로 만들어가고자 했던가와 그것이 실제로는 이런식이었다고 감독이 상상한 부분을 비교해볼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각색과 편집의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텍스트의 세부사항이나 내용들을 충실히 담아냈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다.
Relación의 서문은 이렇게 밝히며 시작한다. ‘이렇듯 모두가 그 어떤 보상을 떠나서 폐하를 섬기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을 갖고 있지만, 개개인의 잘못이 아닌 운명의 잘못,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오직 신의 의지와 판단에 의해 그 결과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이 의도한 것보다 더 충성을 하게 되는 반면, 어떤 이는 자신의 열망을 드러낼 증인도 없이 모든 일이 끝나 버리고 시간이 지나도 묻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다른 정복자들의 정복기와는 달리 실패한 정복기를 써야 하는 자신의 입장에 대한 변명인 것이다.
텍스트는 상당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많다. 가령 인류학자가 새로운 지역에 대한 탐사기를 작성하듯이 인디언들의 풍속과 삶을 면밀히 기술한다. 인디언은 자신의 부인들이 임신을 했을 때부터 아이가 두 살이 될 때까지 부인과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는 다는 묘사를 예로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무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부족과 언어에 대해서, 자연 환경이나 다른 관습들에 대해서 아주 상세히 기술한다. 이러한 묘사들은 보고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실제로 까베사 데 바카가 원주민들의 삶들 속에 충분히 동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것과 대비되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드러나는 내용은 까베사의 행적에 관한 것이다. 반복해서 하나님에 대한 은유나 언급이 드러나고, 치료의 기적을 행하고 원주민들이 자신을 따르는, 마치 예수와 같은 행보를 보여준다. 계속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가고 어필하는 과정이다. 즉, 텍스트에서 까베사 데 바카는 자신의 기록을 통해 객관적인 사실들과 병행하여 자신의 행적을 미화하고 정당화하고자 한다. 이러한 점을 감독은 영화에서 지적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텍스트에서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던 노예 생활을 영화에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보여준다. Mala Cosa에 붙잡혀 노예 생활을 하며 얼굴에 침을 뱉힘 당한 다던지, 도망을 시도했다가 도마뱀 주술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내용들이 그러하다. 영화에서는 알바르의 감정선과 인간적인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반면 텍스트에서는 동료가 굶어 죽는다던가 하는 장면을 제시할 때에도, 그것과 병행하여 인류학자적인 관찰을 집어넣는 장면들이 나타난다.
기적의 치료에 대한 부분 역시 텍스트와 영화는 다르게 제시한다. 텍스트에서는 기적의 치료 능력을 가지게 되고, 원주민들이 자신을 따르고, 그들을 데리고 다니며 예수의 행보를 행하는 것처럼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묘사들을 통해 종교전파라는 소명을 충실히 행하였으며, 자신의 정복기는 비참하고 실패했던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반면 영화에서는 우연히 치료의 능력을 보이고, 원주민들의 호감을 사게되자, 원주민과 생활하면서 배운 그들의 관습으로 치료를 행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즉, 하나님의 기적이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나타나는, 이렇게 되어야 할 일이라 이렇게 되었다. 라는 관점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고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 일들을 따라 갔다는 관점인 것이다.
이는 영화에서 얼마 등장하지 않는 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토굴 속에서 기적의 치료를 행한 이후에, ‘주술 얘기는 그만 해야한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페인에 묶인채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에 알바르는 이렇게 독백한다. ‘우리는 거짓말을 해야만 할거야.’
결국 말탄 스페인인들을 만나고 원주민들과의 생활은 끝이 난다. 그날 밤 술을 마시며 생존자들과 스페인 군인들의 대화 자리의 대화에 감독의 메시지가 드러난다. 에스테반이 금으로 된 도시를 보았고 2일동안 눈이 멀어 있었다, 젖꼭지가 3개 달린 여자를 보았다, 주술사가 냄새나는 이상한 약을 주니 힘이 솟았다 등의 허풍을 떤다.
스페인 사람들이 원주민 섬에 대해 보고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이에 알바르는 이렇게 독백한다. ‘넌 그들이 좋아할만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에스테반. 왜 진실을 말하지 않니?’ 알바르와 일행이 겪은 일은 모험담이나 소설이 아니다. 낯선 땅에 우연히 조난된 이들에 삶에 대한 투쟁이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생존기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대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신과 우상숭배에 동참해야 했고, 때론 동료를 배반해야 했으며, 그들이 숭고하게 여기던 가치는 완전히 잊혀진 채 살아남기에만 집중해야 했다. 이것은 그대로 보고될 수 없는 실패한 정복기였으며, 종교재판과 검열의 위협에도 직면했을 것이다.
따라서 감독은 텍스트의 행간 속에서 까베사 데 바카가 실제로 겪었을 법한 일들을 읽어냈다. 텍스트에서 감추려고 했던 사건들의 실제 모습은 어땠을지 상상하고,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들 사이에서 진짜 모습을 영화를 통해 그려보려 했던 것이다. 이 행적들의 진위 여부를 말해줄만한 생존자, 증인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국왕에게 자신의 여행기를 보고하려 했던 까베사 데 바카의 기록에 대한 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영화 [Cabaza de Vaca]인 것이다. 1차 사료로서의 [조난일기]가 가지는 역사적인 가치로서는 텍스트가 설득력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어떤일이 있었는가?를 묻는다면 영화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손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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