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2017

[17-1]오직 두 사람 - 김영하

Hooni78 2017. 9. 25. 00:18

 김영하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리뷰한 것을 슥슥 읽어보니, 입사 시험에서 방탈출게임에 갖힌 4명의 사람이 있었고, 뭐 그 중에 한명은 신에게 부르짖고 누군가는 문을 부수려하고, 또 누군가는 힌트를 찾으려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자세히 찾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글을 읽었던 탓에 장편 소설을 기대했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주문할 때, 생각이 나서 함께 주문했다. 웬걸. 단편소설이었다. 그랬기에 어쩌다보니 책을 읽으며 단편 소설 묶음집과 장편 소설에 관한 생각으로 넘어갔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가 7년 동안 썼던 7편의 단편 소설들을 묶어서 낸 것이라 한다.


 -그때부터 그 선생이 풀어낸 얘기는 바로 제 얘기 같았어요. 혹시 제 얘기를 어디서 다 조사해 와서 떠느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죠. 언어 영역 강사는 어릴 때부터 '아빠 딸'이었대요. 아빠와 주말마다 영화를 보고,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같이 좋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남자를 만난 적이 있지만 결국은 이러저런 이유로 다 헤어지고 여전히 지금도 아빠와 가장 자주 만나 남자친구와 할 법한 일들을 계속 하고 있다는 거죠.

 -오직 두사람 中


 아버지와 유독 가까운, 그것이 문제가 되어버린 딸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그 전후에서 있던 일들을 편지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 이 단편 소설집의 테마는 상실,과 그 이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타이틀이기도 한 첫 단편부터 조금은 무거운 느낌이었고, 상실과 그 이후에 관한 테마는 다음 단편으로 이어졌다.


 -그는 십일 년 전의 과거에서 난데없이 미래로, 그것도 홀로 내던져진 것이다. 그 미래에는 미쳐가는 아내와 자기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 아들이 있다. 둘 다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윤석은 성민의 눈으로 집 구석구석을 다시 본다. 그의 눈에도 이제 이 집은 낯설고 기괴하다.  (..) 영원과도 같았던 지난 십 년 동안 그의 의무는 자명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 명료하고도 엄중한 명령 앞에 모두가 길을 비켜주었다. (...)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 그는 한 번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민이만 찾으면, 성민이만 찾으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 이후를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를 찾습니다. 中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와 그를 찾기 위해 보냈던 십 년을 배경으로 한다. 아내는 조현병에 걸려 미쳐버렸고, 결국에 아이를 찾았지만 아이는 부모를 낯설어한다. 아이를 찾겠다는 절대명제 이후에 등장하는 비극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 단편집의 테마라고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지난 4월 16일의 세월호 사건 이후에 집필한 이 작품에서 상실과 그 이후라는 테마가 시작됐다고 한다. 


 지난 첫 사랑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사건들을 겪다가 결국 그녀의 자살 이후까지 다루는 [인생의 원점]이나, 이 글의 첫머리에 언급했던 내용을 줄거리로 하는 [신의 장난] 등은 모두 [아이를 찾습니다] 이후에 쓴 글이라 한다. 보통의 단편 소설이라면 사건이 발생하고 이쯤에서 끝-일 것 같은 부분에서, 그 이후의 일어나는 일들을 다시 절반쯤의 분량으로 계속해서 그려낸다. 분위기가 무겁기도 하고, 집요하기도 하다.


 허나, 몇몇 단편에서는 주제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를 열었다. 여태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소설을 위해 빈 워드 창을 띄웠다. 나는 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내가 한 일은 오직 그것 뿐이었다. 그런데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어차피 내지도 않을 소설에 인물이며 줄거리가 뭐가 중요해? 음란하고도 난해하면서 매우 실험적인 이 소설의 서두는 주인공 남자가 뉴욕의 차이나타운에 머물며 기괴한 성적 모험을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옥수수와 나 中


 일제시대 곡마단의 이야기를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풀어내겠다던 화자가 등장한다. 정말로 이야기는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전개되며, 자신이 정신없이 써나가는 글처럼 삶이 진행된다. 글의 템포가 빨라지고 총이 등장하고 죽음에 이르는 약이 등장하고.. 이러한 마술적 리얼리즘 처럼 보이는 느낌이 나머지 단편에서는 드러난다.


 단편 [슈트]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상속받을 진짜 아들을 찾기 위해 "좀 바보 같은 말처럼 들릴 수는 있는데... 두 사람, 피터의 양복을 입어보는게 어때요? 그걸 입어보고 더 잘 맞는 사람이 일단 유골을 가져가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한국에 돌아가 유전자 검사를 해요." 라는 말을 한다던지, (비록 꿈이었지만), [신의 장난]에서 강호동과 도널드 트럼프가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등장해 방탈출 미션이 세계적 글로벌 기업의 특채 시험이었다고 말하는 등이다. [최은지와 박인수]에서는 최은지의 임신한 아이가 화자의 아이라고 사람들이 믿게 되는 방식 역시 그러하다.


 이러한 소설들 역시, '상실'이라는 주제로 엮자면 가능하다. 첫사랑의 상실, 아버지의 상실, 필력의 상실 등으로 말이다. 그러나 전체를 하나의 테마로 아우르겠다-고 말한다면 그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글 첫머리에 말했던 '단편 소설집'에 관한 생각이 이런 것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7년의 시간동안 하나의 단편 소설집을 묶으려 글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다 7편이 한 권 분량이 되었고, 묶어서 출판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단편 소설집이라는 게 하나의 주제만을 아우를 필요는 없다. 다만, 편집자의 의도일까. 책 뒤 띠지에 붙어있던 '우리는 모두 잃으며 살아간다. 여기,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그 이후'의 삶이 있다.' 는 말에 메여 읽으려 했기에, 내가 느끼려 했던 방향에서 틀어지는 기분이었다. 쓰다보니 [오직 두 사람] 리뷰보다는 '단편 소설집은 무엇일까'에 가까워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