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거짓말 - 한은형
한겨레문학상 당선작이다. 사실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아주 흔해 빠진 소설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성장소설이다. 출생의 비밀도 담겨 있고, 자살에 대한 생각도 담겨 있다. 청소년의 성에대한 관심이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들도 들어가 있다. 이런 흔해빠진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소설이 바로 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지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런 주제들에, 하석이라는 생명력있는 인물이 들어감으로서 소설에 활기가 띈다. 악의에 차 있는 것 같으면서도 상투적인 악의는 거절한다. 남들과 달라보이거나 평범해보이고 싶어 하면서도 그것이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길 바란다. 냉소적이면서도 동시에 따듯한 인물이다. 이런식이다. 그녀의 행동에는 그녀 자신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나는 맥이 풀려서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룸메이트는 나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기분 나빠."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뭔가 너만 알고 있는 게 있다고 과시하고 있잖아. 나는 좋아하는 애 얘기도 해줬는데..."
억울했다. 나는 궁금하다고 한 적이 없다. 그 애가 자신 안에 있는 흥분을 식히기 위해서 말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고, 운 나쁘게도 그 누군가가 내가 되었던 것뿐이다.
-나는 소설을 20대가 쓴 소설과 그렇지 않은 소설로 분류했다. 20대가 쓴 소설은 다개 읽을 만하지 않다. 무지막지하게 햄버거를 덮고 있는 머스터드와 케첩만큼이나 과잉된 자의식이 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소설이 있기는 하다. 그런 작가들은 자신들이 20대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30대가 되면 인생이 끝날 것처럼 바들바들 떨지 않는다. 청춘이니 빛이니 꿈이니 하는 낯 뜨거운 말들을 쓰지 않는다. 그런 말들이 얼마나 촌스러운지 알 정도의 감각이 있다.
한국 소설을 자주 읽으면서도 동시에 자주 읽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해 내면을 튼튼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뭔가 길이길이 남아 인간 지성의 빛이 된 소설-흔히 고전이라고 칭하는-을 읽으려는 지적 허영이 있다. 지금 내 나이로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 채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책들을 잡고선 도움이 될 거라고 자위하며 읽곤 했다. 그 사이사이에서 비교적 책장이 잘 넘어가고 스토리라인에 공감이 가능한 한국 소설들을 읽는 식이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책들을 읽으면서 세상을 알아가고 내면을 다지고 간접적인 경험들을 쌓는 것만이 독서의 목적은 아닌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잘 쓴 소설이다 싶은 책들은 대개, 우리가 흔히 느끼는 감정, 경험, 기억들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한 것들이었다. 가령 아주 좋다, 정말 슬프다, 죄책감이 든다, 행복하다, 라는 비루한 단어들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능숙하게 해체하여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주는 것이 좋은 소설로 보인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읽는 행위 속에서 얻고자 하는건 '사람에 대한 이해', 혹은 '사건에 대한 이해'였다. 어떤 사람,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그것을 더 넓게 볼 수 있는 시각들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종류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