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2016

[16-2]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파트릭 모디아노

Hooni78 2017. 9. 19. 16:10

노벨 문학상을 받기 이전에도 이미 책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읽혀왔던 작가라고 들었다막상 접해본 그의 작품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얇은 두께만큼 쉬운책은 아니었다. 300페이지 가량 되는 작은 판형의 책이었지만 삼분의 일 지점을 넘겨서까지도 주인공의 이름은커녕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감을 잡기 어려웠던 것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기 롤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화자는 위트와 함께 흥신소에서 8년간 일을 했다흥신소가 문을 닫으며 기 롤랑은 이제 잊고있던 자신의 과거를 찾겠다고 마음먹는다위트와는 계속해서 편지를 하고기 롤랑이 찾은 단서들을 바탕으로 위트는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책을 막상 읽다보면산발적으로 수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다가전통적인 소설이 취하는 방식-어떤 인물을 등장시켰으면 그 인물의 배경/말투/행동 등을 계속해서 노출하여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는-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서 막상 어떤 인물이 새로 들어왔다가 나갔지만 여전히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는지이 소설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추천하는 독법은새로운 인물이나 지명 등이 나올때마다 그냥 A, B, C 등으로 읽는 것이다그 많은 인물들을 기억하려하면 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질 않는다혹자는 흰 종이에 관계도를 그려가며 읽는 것을 추천하지만그것보다는 이름 등의 고유명사 자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읽는 것이 좋아보인다그럭저럭 읽어나가다보면 책의 절반쯤 넘어가면 기억에 나는 인물들이 있기 마련이고그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48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의 장들이 하나씩 넘어갈 때 마다 기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난다한 사진의 인물을 찾아가면 또 다른 단서를 주고그 단서를 바탕으로 다른 인물을 찾아가는 것을 반복한 결과 기는 자신이 스테른지미 페드로혹은 페드로 맥케부아라고 불리는 인물이었음을 기억해낸다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를 드디어 만나지만기는 그 상대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므로 대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너는 영사관으로 나를 만나러 온 적도 있었어?”하고 내가 물었다.

네가 나한테 도미니카 여권을 주었을 때.”

나는 내가 그 영사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결국 이해를 못 했어.”

나도 몰라... 어느 날 너는 루비로사의 비서 비슷한 일을 한다고 그랬고 그게 너한테는 좋은 피신처라고 했었어루비가 그 자동차 사고에서 죽은 것은 정말 가슴 아팠어.”

그럼가슴 아프고 말고또 하나의 증인을물어볼 사이도 없이 잃어버렸구나.

이봐 페드로... 너의 진짜 이름이 뭐였지항상 나는 그게 궁금했었어프레디는 네가 페드로 맥케부아가 아니라고 말했어그리고 너한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준 것은 루비였다고 말이야.”

내 진짜 이름나도 그걸 알수만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가 그 말을 농담으로 알아듣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미소를 지었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여러권의 소설을 썼지만 그 자신은 정작 한권의 책만을 썼다고 이야기한다그의 주요한 노력들은 인간의 정체성과 기억들을 주제로 한 글들을 쓰는 것이었고 그러한 맥락에서 그의 소설들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읽어내기 어려운 책이었다. 읽는 내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위에서 흐느적거리듯이 떠다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