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19-3]저스티스맨 - 도선우

Hooni78 2019. 2. 12. 18:09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들은 대부분 재밌게 읽어왔기에 부담없이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다. 연쇄살인이라는 소재와 인터넷 세계에서 일어나는 재빠른 격동의 무질서함을 다룬다. 두 소재와 지금 현대라는 배경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흡인력을 담보하는 경우가 많다. 책장은 빨리 넘어갔고 스토리와 전개는 흥미로웠으나, 묘사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토리는 쭉쭉 빠른속도로 전개되는데 해당 상황에 대해 충분히 몰입하고 이해하지 못한 채로, 가령 아래와 같은 상황을 비유/묘사 했을 때 확 현장감있게 와닿지 못했다.


 오래전에 발효된 국가 계엄령 따윈 이 폭동을 잠재울 수 없다. 군인들의 총과 탱크는 이미 폭도들의 손에 넘어간 지 오래다. 정보산업의 최첨단 강국이었던 이 나라에는 이제 국민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라진 국민의 자리엔 누리꾼만이 가득하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리꾼의, 누리꾼에 의한, 누리꾼을 위한 광케이블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무형의 그들이 유형의 도시 폭도로 변신한 이후 폭력과 폭동, 방화와 살인은 그야말로 누군가를 먼저 해하지 않으면 결국 당하고 마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방어기제이자 선택의 여지 없는 광기의 살인으로 끝내 발전하고 말았지만, 기실 그 시작은 개인의 복수로부터 비롯되었다. 218P


 이제까진 대상 수상작만 읽어왔는데 우수상 수상작들도 책으로 많이 출간되어 있는걸 보니, 다음 번 도서관에 갈때에는 가볍게 한 두 권쯤 챙겨와도 괜찮을 것 같다.


 일곱 번째 피살자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그 여행자 카페의 운영자였다. 두 발의 탄두가 그의 이마를 뚫고 지나가는 순간에도 그는 그 카페의 운영자였다. 그는 카페 정모가 끝나고 집으로 귀가하던 차 안에서 살해당했다.

 당시 그는 만취 상태였고 그럼에도 오랜 습관으로 대리 운전 따위는 맡기지 않았다. 운전은 오히려 술에 취했을 때 더 잘됐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사고를 내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검문에 걸려도 경찰 따위 혀 안에서 사탕을 굴리듯이 잘 다룰 자신이 있었다. 만에 하나 음주로 사고가 난다면 무고한 타인에게 피해가 갈 것이고 그러한 사고 끝에 때론 한 가정의 행복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149P


 그는 어느 날 자신의 그러한 깨달음이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된 것을 목격했다. 추상미술을 전시하던 어느 미술관 벽면에서 발견한 잭슨 폴록의 작품 속에서 그는 또 하나의 자아를 발견했다. 자신의 마음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증오가 커다란 화폭 위에 화려하게 발화되어 있었따. 자신의 욕망이 예술적 형태로 담겨 있는 모습을 보고 느는 눈이 번뜩 뜨였다.

 그는 매일 그곳을 찾아가 그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 그는 그것을 그림이 아닌 실체로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랬다. 그는 자신이 갈구하던 삶의 어떤 방향을 그곳에서 찾은 느낌이었다. 탈출구가 거기 있었다. 편벽에 불과한 기이한 습관도 예술이란 탈을 쓰면 이해가 되는 기벽으로 둔갑하는 예술가의 삶이라는 것이, 자신의 삶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그는 각성했다. 위대한 작품을 창조한 예술가들이 얼마나 기이한 인간들이었는지를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결코 무모한 발상은 아니었다. 24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