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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2016

[16-4]스토너 - 존 윌리엄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업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문단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혹은 소설을 전부 읽은 후에 이 도입부를 다시 읽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도입부를 찾기 힘들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문장들은 비단 스토너의 삶을 잘 표현해 준 문장일 뿐만 아니라 소설 전체에 드러나있는 분위기 자체를 담고 있다. 

 위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대로, 스토너라는 교수의 삶을 한권의 소설로 표현한 책이었다. 평범함이라는 기질이 존재한다면 그를 본 사람들은 그를 평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의 인생은 대체로 무난하게 흘러간 것처럼 보였을 것이며 도무지 도전이나 열정같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의 인생을 쭉 따라가다보면 그 안에서 보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그의 인생을 대하는 관점들에 마음이 잔잔하면서 동시에 답답해진다.


 그의 인생에서 그가 열정이라는 것을 발휘해 본 것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대개 그것은 실패로 끝났다. 이디스와 사랑에 빠지고 청혼하였을 때, 이디스와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고 그레이스를 가졌을 때, 로맥스의 학생에게 박사과정을 허락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드리스콜과 다시 연애를 시작했을 때이다. 이러한 일들이 원인이 되어 나타난 악인들이 그의 삶의 행보를 방해했을 때에도 그는 끝까지 그들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하자면 권선징악은 없고, 악인은 그대로 승리한다는 것이다.


 한 달도 안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개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가 애정을 담아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만지면, 그녀는 그를 외면하고 내면으로 숨어 들어가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전보다 한층 더 힘들게 새로운 한계까지 자신을 혹사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같은 침대를 쓰는 것만은 고집스럽게 그만두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그녀가 자다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여 그에게 닿을 때가 있었다. 또한 결혼생활에 대한 스토너의 깨달음과 결의가 사랑 앞에서 무너져 내려 그가 그녀를 향해 움직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 그녀가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않으면, 긴장해서 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베개에 묻고서 자신을 범하는 그의 몸짓을 견뎌냈다. 그럴 때 스토너는 최대한 빨리 사랑의 행위를 하면서 이렇게 서두르는 자신을 증오하고, 그녀에 대한 열정을 후회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소," 그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좀 너그러워져요. 아이를 너무 몰아붙이지 마시오."

 이디스는 받침접시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레이스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요. 친구도 있고, 열심히 몰두할 일도 있으니까요. 당신이야 너무 바빠서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요새 아이가 훨씬 더 외향적으로 변했다는 건 당신도 알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소리 내서 웃기도 한다고요. 옛날에는 절대 안 웃었잖아요. 거의 한 번도."

 윌리엄은 놀란 표정으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 정말로 그렇게 믿는 거로군."

 "당연하죠." 이디스가 말했다. "나는 그 아이 엄마예요."

 스토너는 이디스가 방금 한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것만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가 왠지 고요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나를 증오하는군. 그렇지 않소, 이디스?"

 "뭐라고요?" 그녀의 목소리에 깃든 놀라움은 진심이었다. "아, 윌리!" 그녀가 또렷한 소리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 같은 소리 마세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당신은 내 남편인데요."

 "아이를 이용하지 마시오." 그는 목소리가 떨리는 거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요. 당신도 알 거요. 다른 건 뭐든 괜찮지만, 계속 그레이스를 이용한다면 내가..." 그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잠시 뒤 이디스가 말했다. "당신이 뭘요?" 오기가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목소리였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봤자 내 곁을 떠나는 것 뿐인데, 당신은 그럴 사람이 절대 아니에요. 그건 우리 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갈린다고 한다. 하나는 스토너의 삶에서 무언가 참담하고 슬픈 구석들을 발견해 내고 그의 삶이 실패했음에 감동적이고 슬픈 소설이라고 말하는 독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가 매 순간 자신의 삶에 충실했으며 끝가지 애정을 가진 분야에 종사하였음에 위대하고 대단한 인물이 그려진 소설이라고 말하는 독자이다. 둘 다 맞는 해석이다. 언뜻 지루해보이는 스토너의 삶을 들여다보며 독자는 자신의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어떤 종류든간의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아름다운 소설이다.